바르부르크 효과 – 암세포는 정말 포도당을 더 좋아할까
1924년, 독일의 생화학자 오토 바르부르크는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했다. 암세포가 정상세포보다 포도당을 훨씬 빠르게 소비한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한 점은 산소가 충분한 환경에서도 암세포가 비효율적인 발효 방식으로 에너지를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이 발견은 ‘바르부르크 효과’로 불리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암 연구의 핵심 개념으로 남아 있다. 실제로 PET-CT 검사가 이 원리를 활용한다. 방사성 포도당을 주입하면 암세포가 정상세포보다 10~40배 빠르게 흡수하기 때문에 화면에서 밝게 빛나는 부분이 종양 위치다.
여기까지만 보면 “설탕을 끊으면 암세포를 굶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인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스탠포드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지앙빈 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바르부르크 효과는 단순히 에너지 문제가 아니다. 포도당 대사 방식이 바뀌면서 세포 정체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발현 패턴이 달라진다. 간세포가 간세포답게 행동하지 않게 되고 폐세포가 폐세포 역할을 잃는 것이다. 이런 세포 정체성 상실이 바로 암의 특징이다.
포도당은 뇌를 포함한 모든 세포의 에너지원이다. 설탕을 전혀 먹지 않아도 우리 몸은 단백질과 지방을 포도당으로 전환하는 ‘당신생’ 과정을 통해 혈당을 유지한다. 다시 말해 아무리 탄수화물을 끊어도 암세포에 포도당 공급을 완전히 차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암세포 굶기기의 과학적 한계
스탠포드 의대 종양 영양사 에리카 코너는 “설탕이 암을 유발한다는 말은 위험한 문장”이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잘못된 정보와 패닉으로 이끌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문제는 암세포의 ‘창의성’에 있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의 산토샤 바르다나 박사 연구팀에 따르면 암세포는 포도당이 부족해지면 글루타민이나 지방산 등 다른 에너지원으로 재빠르게 전환한다. 특정 영양소 하나만 차단해서 굶겨 죽일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 구분 | 정상세포 | 암세포 |
|---|---|---|
| 주요 에너지 대사 | 산화적 인산화 | 해당작용 – 바르부르크 효과 |
| 포도당 흡수 속도 | 기준치 | 10~40배 빠름 |
| 에너지원 제한 시 | 사멸 | 대체 연료로 전환 |
| 산소 활용 | 정상 | 산소 있어도 발효 선호 |
UC샌프란시스코 데이비드 루게로 교수팀은 2024년 8월 네이처지에 흥미로운 연구를 발표했다. 케토제닉 식이요법과 특정 항암제 – eFT508 – 를 병행하면 췌장암 쥐 모델에서 종양이 줄어들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루게로 교수는 이 연구가 “식이요법만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특정 대사 경로를 차단하는 약물이 핵심이었고, 케토제닉 식단은 그 약물 효과를 극대화하는 보조 역할이었다.
케토제닉 다이어트 임상시험 결과
설탕과 탄수화물을 극도로 제한하는 케토제닉 식이요법은 암 치료 보조요법으로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2024년 기준 수십 개의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거나 완료되었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옥스퍼드 학술지 JNCI에 2024년 7월 게재된 체계적 문헌고찰이 답을 준다. 연구팀은 모든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분석한 뒤 이렇게 결론지었다.
▲ 케토제닉 식이요법이 암을 ‘치료’한다는 근거는 없다
▲ 소규모 연구들에서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
▲ 대규모 무작위 임상시험은 대부분 부정적 결과
2025년 7월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된 교모세포종 – 악성 뇌종양 – 환자 대상 1상 임상시험도 비슷한 결론이었다. 케토제닉 식이요법은 ‘안전하고 실행 가능’했지만 종양 억제 효과를 입증하기엔 근거가 부족했다.
다만 희망적인 측면도 있다. 2025년 프론티어스 인 뉴트리션에 게재된 메타분석에 따르면 케토제닉 식이요법은 체중 관리와 혈당 조절에 긍정적 효과를 보였다. 또한 일부 연구에서 항암 치료 부작용 감소와 삶의 질 향상이 관찰되었다.
핵심은 케토제닉 식이요법이 단독 치료법이 아니라 ‘보조요법’이라는 점이다. 수술, 항암제, 방사선 치료를 대체할 수는 없다.
한편 2025년 7월 발표된 NHANES 데이터 분석은 논란을 더했다. 2001~2018년 미국인 식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케토제닉 비율이 높은 식단을 유지한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암 발생 위험이 높게 나타났다. 물론 이건 관찰 연구라 인과관계를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케토제닉 식단이 암 예방에 좋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음을 보여준다.
암 환자 영양 관리의 실제
그렇다면 암 환자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전문가들의 조언은 의외로 단순하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영양사 카라 안셀모는 “과일에 과당이 있으니 피해야 한다는 건 미신”이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채소와 과일 위주의 식단이 암 위험을 낮춘다는 게 영양학계의 합의다.
암 환자에게 극단적 식이 제한이 위험한 이유는 명확하다.
– 항암 치료로 인한 체중 감소가 흔하다 – 영양 부족은 치료 내성을 떨어뜨린다 – 면역력 저하로 감염 위험이 높아진다 – 극단적 제한 식이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다만 설탕 ‘과다’ 섭취가 문제인 건 분명하다. 2014년 PLOS One에 게재된 대장암 환자 1,011명 추적 연구에서 하루 2잔 이상 설탕 음료를 마신 환자는 재발 위험이 67% 높았다. 설탕 자체가 암을 키우는 게 아니라 비만과 대사증후군을 유발해 간접적으로 암 위험을 높이는 것이다.
Cancer Research UK는 이렇게 정리한다. “설탕을 끊는다고 암이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설탕 섭취를 줄여 건강 체중을 유지하면 최소 13종의 암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실제로 암 전문 영양사들이 권장하는 방식은 특별하지 않다. 초가공식품 줄이기, 설탕 음료 제한하기, 통곡물과 채소 위주 식단 유지하기. 급진적 제한보다는 지속 가능한 건강 식습관이 목표다.
치료 중인 환자라면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메스꺼움이나 피로로 식욕이 없을 때 초콜릿 쿠키 두 개라도 먹는 게 아무것도 안 먹는 것보다 낫다. 영양 상태가 치료 결과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암 환자 설탕 제한 FAQ 자주 묻는 질문
Q1. 과일도 끊어야 할까?
아니다. 과일에 포함된 과당은 정제 설탕과 다르다. 식이섬유, 비타민, 항산화물질이 함께 들어있어 혈당을 천천히 올리고 포만감을 준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영양사팀은 “통과일 형태의 적정량 과일 섭취는 오히려 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권고한다.
Q2. 케토제닉 식이요법을 해도 될까?
담당 의료진과 반드시 상의해야 한다. 케토제닉 식이요법의 안전성은 확인되었지만 암 치료 효과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특히 체중 감소가 우려되는 환자나 특정 항암제를 복용 중인 경우 금기일 수 있다. 임의로 시작하면 치료를 방해할 수 있다.
Q3. 설탕 섭취와 암 발생은 관련이 있을까?
직접적 관련보다는 간접적 관련이 더 명확하다. 설탕 과다 섭취 → 비만 → 만성 염증 → 암 위험 증가라는 경로다. 세계보건기구는 비만이 최소 13종의 암 위험을 높인다고 경고한다. 설탕을 ‘적당히’ 먹으면서 건강 체중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설탕을 끊으면 암이 낫는다”는 말은 반쪽짜리 진실도 되지 못한다.
암세포가 포도당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 설탕만 끊어서 암을 굶겨 죽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극단적 식이 제한은 치료를 방해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가 말해주는 건 이것이다. 균형 잡힌 식단, 적정 체중 유지, 그리고 담당 의료진과의 상담. 특효약 같은 식이요법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