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게임 중에서도 길찾기(공간탐색) 게임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해마와 공간기억이 알츠하이머 초기에 가장 먼저 흔들리는 뇌 영역이기 때문이다. 실제 연구 사례를 통해 근거와 한계를 함께 짚는다.
길을 찾는 능력이 왜 치매의 초기 신호로 주목받을까
낯선 동네에서 처음 가는 식당을 헤매지 않고 찾아가는 것, 주차장에서 내 차를 기억해내는 것 모두 뇌 안쪽 깊은 곳에 있는 해마(hippocampus, 기억을 저장하고 주변 공간을 마치 지도처럼 그려내는 뇌 부위)가 담당하는 일이다. 해마는 몸속 내비게이션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내 위치를 계속 추적하면서 출발점부터 지금까지 이동한 방향과 거리를 스스로 계산해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을 신경과학에서는 경로적분(path integration)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될 때 이 해마와 그 주변의 내후각피질(entorhinal cortex, 해마로 들어가는 신호를 처리하는 관문 역할의 뇌 부위)이 다른 뇌 영역보다 먼저, 그리고 더 크게 손상된다는 점이다. 여러 신경과학 리뷰 논문은 공간탐색 능력 저하가 기억력 문제나 언어 장애 같은 흔히 아는 치매 증상보다 먼저 나타나는 초기 징후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경도인지장애(치매 전 단계) 환자를 추적한 연구에서는 길찾기 능력이 정상 노화 그룹과 초기 치매 그룹의 중간 정도로 떨어져 있는 양상이 반복적으로 관찰됐다. 아직 다른 증상이 뚜렷하지 않은 시기에도 뇌 안에서는 해마 기능 저하가 먼저 시작되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연구자들은 기억력 검사지나 문진표보다 훨씬 이전 단계에서, 사람이 실제로 길을 찾는 방식을 관찰하면 뇌 변화를 더 민감하게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주목했다. 그 아이디어를 대규모로 실험한 결과물이 바로 게임이었다.
씨 히어로 퀘스트, 게임으로 뇌 지도를 그린 연구
씨 히어로 퀘스트(Sea Hero Quest)는 2016년 도이치텔레콤이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 게임 개발사 글리처스, 알츠하이머 리서치 UK(Alzheimer’s Research UK)와 함께 만든 모바일 게임이다.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며 지도를 확인한 뒤 체크포인트를 순서대로 찾아가는 단순한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선택한 경로, 걸린 시간, 실수한 지점이 모두 익명화된 연구 데이터로 쌓이도록 설계됐다.
목표는 10만 명 참여였지만 실제로는 전 세계에서 4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고, 누적 플레이 시간을 합치면 117년 분량의 공간탐색 데이터가 모였다. 전통적인 실험실 방식으로 이만한 규모의 자료를 모으려면 수천 년이 걸렸을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 데이터를 분석한 UCL 연구팀은 2019년 학술지 PNAS(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결과를 발표했다. 알츠하이머 위험을 높이는 유전자로 알려진 APOE4를 보유한 50, 60대 그룹은 이 유전자가 없는 그룹보다 게임 속에서 더 비효율적인 경로로 체크포인트를 찾아갔다. 아직 기억력 검사에서는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시점인데도, 길을 찾는 방식만으로 두 그룹이 구분됐다는 점이 이 연구의 핵심이다. 이후 발표된 관련 연구에서도 같은 경향이 재확인되면서, 공간탐색 능력이 알츠하이머 조기 신호 후보로 거론되는 근거가 쌓여왔다.
다만 무료로 즐기던 소비자용 앱은 연구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서 스토어에서 내려갔다. 대신 더 정교하게 움직임을 기록하는 VR(가상현실)판이 만들어져, 프랑스 리옹 병원 등 일부 의료, 연구기관에서 치매 조기 진단 가능성을 검증하는 임상연구에 쓰이고 있다.
국내에서 실제로 쓰이는 인지훈련 게임과 프로그램
씨 히어로 퀘스트처럼 대규모 연구용으로 만들어진 게임과 별개로, 실생활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인지훈련 수단도 여러 갈래로 나뉜다.
국립중앙치매센터는 자가 위험도 체크와 인지훈련 콘텐츠를 함께 제공하는 치매체크 앱을 구글, 애플 스토어에서 무료로 운영한다. 기억력, 계산력, 언어능력, 공간지각능력 등 여러 영역을 자극하는 문제를 담고 있어 특정 유전자나 조기진단보다는 일상적인 두뇌 자극 습관을 만드는 용도에 가깝다. 중앙치매센터는 이 밖에도 낱말 맞추기, 퍼즐, 장기, 바둑, 카드놀이 같은 전통적인 활동도 두뇌 자극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안내하고 있는데, 다만 종류 자체보다 재미있어서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한편 처리속도 훈련이라는 인지훈련 방식은 조금 다른 층위의 근거를 갖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지원한 대규모 무작위 대조군 연구인 ACTIVE 연구에서, 이 훈련을 받은 그룹은 10년 뒤 치매 발생 위험이 낮게 나타났다. 다만 이 결과와 시중 뇌 훈련 앱 전반의 실제 효과를 둘러싼 논쟁은 뇌 훈련 앱 효과를 다룬 팩트체크에서 더 자세히 다뤘다.
게임은 치료제가 아니라 보조 수단이다
길찾기 게임과 치매 연구를 연결 짓는 결과들은 흥미롭지만,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 씨 히어로 퀘스트는 애초에 치매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려고 만든 제품이 아니라, 뇌 데이터를 모으기 위한 연구 도구였다는 점이다. 게임을 잘한다고 알츠하이머 위험이 낮아진다거나, 게임을 자주 한다고 병을 막을 수 있다는 식의 인과관계는 지금까지의 연구로 증명되지 않았다.
실제로 상업용 뇌 훈련 앱 업계에서는 과장 광고로 제재를 받은 사례도 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2016년 뇌 훈련 앱 루모시티(Lumosity)에 알츠하이머 예방 효과를 과장 광고했다는 이유로 벌금을 부과했다. 게임 안에서의 실력 향상이 실제 일상생활의 기억력이나 판단력 개선으로 그대로 이어진다는 근거는 아직 제한적이라는 게 다수 연구의 공통된 결론이다.
그렇다고 게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새로운 규칙을 익히고, 집중하고, 실수를 교정하는 과정 자체는 뇌를 자극하는 활동이 될 수 있다. 다만 게임 하나로 치매를 막겠다고 접근하기보다는,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사회적 교류, 균형 잡힌 식사 같은 생활습관과 함께 두는 편이 현실적이다. 특히 수면 부족은 그 자체로 별도의 치매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데, 관련 내용은 수면 시간과 치매 위험의 관계에서 다룬 적이 있다. 기억력 저하나 길찾기 실수가 반복적으로, 그리고 이전과 다르게 눈에 띄게 늘었다면 게임으로 자가 진단하기보다 신경과나 치매안심센터에서 전문적인 평가를 받아보는 편이 안전하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길찾기 게임만 열심히 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나요?
게임 하나만으로 치매를 예방한다는 근거는 없다. 씨 히어로 퀘스트 같은 게임은 애초에 치료 목적이 아니라 연구용 데이터 수집 도구로 설계됐다. 운동, 수면, 사회적 교류, 식습관 관리를 함께 챙기는 종합적인 접근이 더 현실적이다.
Q2) 씨 히어로 퀘스트는 지금도 다운로드해서 할 수 있나요?
무료 소비자용 앱은 연구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스토어에서 내려갔다. 현재는 VR판이 일부 병원, 연구기관의 임상연구용으로 쓰이는 정도이며,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형태로는 남아 있지 않다.
Q3) 길을 잘 못 찾으면 바로 치매 위험이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길찾기 능력은 나이, 스트레스, 평소 방향감각, 내비게이션 의존 습관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한두 번의 실수가 아니라 이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반복적으로 나빠지는 경우라면 자가 진단 대신 전문의 상담을 받는 것이 정확하다.
Q4) 국내에서 무료로 쓸 수 있는 인지훈련 프로그램이 있나요?
국립중앙치매센터가 운영하는 치매체크 앱을 구글, 애플 스토어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기억력, 계산력, 공간지각능력 등을 자극하는 콘텐츠와 함께 자가 위험도 체크 기능도 제공한다. 장기, 바둑, 카드놀이 같은 전통적인 보드게임도 접근성이 높은 대안이다.
본 정보는 일반적 건강 정보로, 개인의 증상, 복용 약물, 기저질환에 따라 적용이 다릅니다. 의료 행위 결정 전 의사, 약사와 상담하세요.

